본문 바로가기
향수/시향기

구딸파리 르떵데헤브 le temps des reves

by 엔프제 2020. 9. 30.

 

 

#LE TEMPS DES REVES

 

*노트정보 : 오렌지 플라워(네롤리 오일, 오렌지 블라썸 앱솔루트), 베르가못, 머틀, 화이트 머스크, 샌달우드

 

일단은.... 우리 엄마가 극찬을 하셨다. 굉장히 까다로우셔서 좋은 피드백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는데(지금까지로는 유일하게 차링이 만점받음) 이번엔 묻기도 전에 먼저 너무 좋다고 호감을 표하셨다.. 감동....

 

첫향은 조금 매콤하고 삐쭉삐쭉한 뉘앙스다. 네롤리+베르가못, 둘 다 내가 첫향에서 강하다고 느끼는 향조인데 둘이 만나서 그런지 더 강렬하다. 구딸의 오드아드리앙을 한 50배 농축하면 이런 느낌일까..? 오드아드리앙이 모난 구석 없이 예쁘게 다듬은 둥글둥글 시트러스라면, 르떵데헤브의 첫향은 오드아드리앙의 뉘앙스를 기본으로 깔고- 조금 더 개성있고 강렬하게 다가오는듯한 느낌이다. 누군가는 매캐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매캐함 극혐러인 내가 수용 가능한 정도라서 이 부분에서 큰 호불호가 갈릴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이 강렬함(혹은 매캐함)은 길어야 5분정도 지속되기 때문에 큰 걸림돌은 아닐 것 같음. 그런데, 시트러스의 존재감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름용이라고 하기에는 톤이 그렇게 밝지는 않다. 마냥 맑은 시트러스는 아니고, 약간의 탁함이 끼어 있는? 그래서 가을겨울에도 충분히(아주 무겁진 않더라도) 사용 가능하겠다고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그 매운 느낌이 가시고, 아주아주 부드러운 머스크가 점점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 첫향에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 시점부터의 향이 너무 예뻐서 아주아주,,, 정말 구딸덕후로서 너무 행복했음,, 너무 둥글고 예쁘다. 아까의 그 삐쭉삐쭉함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구딸 향수를 뿌리면서 항상 느끼는 부분이지만 구딸은 '흔한듯 안흔한듯'의 경계를 정말 잘 지키는 것 같다. 호불호가 크게 갈릴만큼 독특하진 않은데, 오히려 어디서 맡아본듯한 향이라고 잠깐 생각하게 되는데 맡으면 맡을수록 쉽게 찾기 어려운 향이라는 걸 느낌.. 익숙한 향에 바리에이션 집어넣은 느낌..? 그런데 이번 르떵데헤브도 그렇다고 느낀다. 첫향에서 느꼈던 시트러스가 부드럽게, 몽글몽글한 형태로 바뀐 채로 잔잔하게 깔려있고, 그 위로 부드러운 머스크가 폭- 하고 퍼진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화플 특유의 꼬릿함 한 꼬집!!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채도가 강하지 않고, 뽀-얀 이미지가 그려진다. 꼭 꿈 속에 있는듯한..? 밝은 색의 하늘하늘한, 여리여리한 옷과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프랑스 그라스에서 영감을 받아 태어난 향수라고 들었는데, 아직 프랑스 가 본 적도 없지만 약간 여기가 프랑스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향이다. 풍부하고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르떵데헤브를 맡으면서 구딸의 오드아드리앙과 엉마뗑도하주가 떠올랐다. 첫향이, 그리고 그 이후에도 잔잔히 깔려있는 느낌이 오드아드리앙과 굉장히 닮았다. 보통 시트러스와는 다른 느낌의, 둥글둥글하고 예쁜 오드아드리앙만의 뉘앙스를 참 좋아하는데 그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려있다. 여기에, 엉마뗑도하주의 '예쁜 느낌'이 같이 느껴진다. 그 예쁜 느낌을 참 좋아했는데 개인적으로 엉마뗑도하주에서 각티슈 향기를 맡았어서 참 아쉬워했다,, 흑흑 그런데, 르떵데헤브에서는, 엉마뗑도하주의 그 예쁜 느낌만을 쏙 집어넣은듯한 느낌을 받아서 너무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오드아드리앙 잔향에다가 엉마뗑도하주 예쁜느낌 한꼬집 넣으면 르떵데헤브 대충 80프로정도는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특히 더 맘에 들었던 부분은 잔향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여기서 뮤게(은방울꽃)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다. 미들 즈음부터 잔향으로 갈 때까지 뮤게스러움이 슬슬 올라오는데 그 왜 뮤게향수 특유의 풀비린내가 없다. 뮤게의 둥글둥글하고 투명한 예쁜 느낌이 좋아서 한때 뮤게 향수만 열심히 팠는데, 비슷한 뉘앙스가 느껴져서 참 좋았다. 뮤게도 호불호가 꽤 갈리는 향조라고 알고 있는데, 그 호불호 갈릴법한 부분만 쏙 빼고 뮤게의 무난하고 예쁜 향만 남은 느낌?

 

시간이 더 지나서, 살 위에서만 향이 은은히 맴도는 정도가 되면 아주아주 뽀얗고 투명한 잔향이 남는다. 그 왜, 나는 잔향 좋은 향수 뿌리고 바로 샤워하는 걸 좋아하는데,, 향이 수증기와 섞여서 투명하게 뽀얗게 변하는 느낌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수증기 속에서 나는 냄새! 그런데 르떵데헤브의 잔향은 꼭 그런 분위기다. 일반적인 잔향들보다 명도가 높고 맑은 느낌. 그러니까, 꼭, 화이트머스크/화플 베이스의 향수를 뿌리고 바로 샤워하러 들어갔다 나와서 다시 뿌린 곳 냄새 맡으면 나는 수증기 머금은 뽀얀 살냄새..? ㅎ투머치토커네... 어쨌든, 그래서인지 되게 꾸밈없이 은은한 비누향이라고 느꼈다.

 

 

전반적으로, 큰 호불호 없이 예쁘게 사용하기 좋을 향이라고 느꼈다. 나이는 20대 초중반 이후로는 상관 없을 것 같고, 캐주얼한 느낌보다는 여리여리하고 단정한 느낌의 옷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네롤리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도 네롤리 특유의 톡 쏘는듯한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의외로 괜찮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평소 화플, 머스크를 좋아하지만 이들 특유의 파우더리함이라던지 매캐함(화장품냄새같은)을 극혐하는 사람(=나)이라면 꼭 한번 시향해보기를 권함! 깔끔하고 담백하게 예쁜 느낌이다.

 

 

 

 

#Time of dream

저는 어려서부터 굉장히 엄하게 자란 편이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놀러가는것도 정말정말 쉽지 않았거든요. 그런 제가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제주도에 가게 됐어요! 당연하게도 부모님의 반대가 정말 컸지만, 아주아주 끈질긴 반항 끝에 제 인생 첫 친구들과의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ㅎㅎ 제 인생 첫 반항이었던 것 같아요...ㅎㅎㅎ

 

수능 결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같이 여행갔던 친구들과 갈등의 싹도 피어났고,, 심지어 저 날은 바람도 엄청 세게 불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모래가 바람을 타고 와서 얼굴을 엄청 때리는 거 있죠. 나중에 보니까 막 다 모공에 모래가루 끼어있고,,, 오 너무 tmi였네요 아무튼 정말 안좋은 일들이 겹겹이 일어났는데도 그래도 저는 너무 좋더라구요. 이제 성인이라는 생각, 드디어 갑갑함 속에서 자유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정말정말 시원했어요! 그 모래바람을ㅋㅋㅋ 맞으면서도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던거 있죠. 그 때 찍은 사진이랍니다..ㅎㅎ

 

르떵데헤브의 향을 맡으면서, 여유롭게 바닷바람을 솔솔 맞는듯한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는데요. 물론 제가 맞았던 바람이 여유로운 바닷바람은 아니었으나,,ㅎ,,, 제 꿈같았던 시간이, 르떵데헤브를 맡으면 그려지는 그림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구딸에서 르떵데헤브에 담고자 했던 이야기를, 저도 두고두고 향기를 맡으면서 제 기억과 연관지어 떠올릴 것 같아요.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고, 제 최애브랜드인 구딸...💗이 앞으로도 열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이만 글은 마무리해보겠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