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힘 5부>
집이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고들 하는데, 금융권에서는 주택 소유자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고들 한다. 빚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집을 회수하면 되기 때문에.
재산 소유 민주주의 : 모든 시민이 개인 재산을 소유해 정치, 경제적 삶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민주주의 이론
영미권에서는 재산소유 민주주의라는 주장을 내세웠고, 부동산 소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부동산을 소유하자 금융권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택구입자금대출 용도로 시중에 수조 달러가 풀렸다. 여기에는 서브 프라임 대출금(: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이 집을 담보로 받는 대출금)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간과한 것은, 부동산 가격 역시 다른 금융 자산과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오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동산이 안전하다는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영국 귀족의 몰락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히 금융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30년까지는 주로 대지주 귀족이 큰 돈을 벌었다. 그렇다면 농업의 발달로 수확량이 크게 증가했는데도 귀족들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부동산의 속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토지를 수입원으로 봤는데, 토지의 가치를 맹신하고 무리하게 돈을 빌렸다. 토지란 담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1840년대 중반부터 빌린 돈을 갚는 것이 힘들어졌는데, 제 2대 버킹엄 섄도스 공작-리처드 템플 그렌빌 2세는 근대 최초로 발생한 부동산 위기의 첫 희생자이다. 재산이 엄청났던 공작은 돈을 물 쓰듯 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는데, 1845년부터 곡물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농경지에서 나오는 수입이 감소했고 교회의 땅값도 곤두박질쳤다. 땅값이 폭락하자 토지를 담보로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처럼 토지의 자산 가치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작위나 넓은 땅을 물려받는 것 보다 안정적인 직업과 꾸준한 수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공작이 몰락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 부동산 소유자에게만 투표권이 있었던 시대가 가고, 성인이면 누구나 투표를 하게 되었다. 귀족층의 농사 수입이 줄어들며 시민 참정권이 확대된 것이다.
그렇다고 사유재산 제도가 보편화된 것은 아니었는데, 1938년까지만 해도 실 거주자가 소유한 주택은 영국 전체 주택의 1/3이 안되었다. 주택보험을 통한 재산소유민주주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자가 거주자 비율은 40%에 불과했는데, 과거 영국 계급 사회에서 상류층만이 재산을 소유했던 것과 달리 훗날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 누구나 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1929년 미국 전역이 공황에 허덕일 때, 공업도시 디트로이트는 특히 더 심했다. 자동차업계는 고용인원을 절반으로 줄였고 임금마저 절반으로 삭감했다. 1932년 3월 7일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해고당한 근로자 5000명은 실업수당 지급을 촉구하며 비무장 시위를 벌였는데, 그들에게 경찰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고 이 사건으로 노동자 5명이 희생되었다. 장례식에는 6000명이 참석해 세계 노동자의 노래를 부르며 희생자를 추모하였다.
대공황이 빚은 사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은 뉴딜 정책(: 대공황 이후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고자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인 루스벨트가 추진한 경제정책)을 추진하였는데 여기에는 주택정책도 포함되었다. 내집 장만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자, 루스벨트 행정부는 재산소유 민주주의를 도입했고 이는 공산 혁명을 막기에 완벽한 방법이었다. 미국 정부는 주택 보유를 장려하고자 주택 시장 부양책을 내놓았다. 주택담보대출 기관에서 돈을 빌렸는데 이후 은행이 파산했다면 돈을 빌린 사람들의 예금만큼은 정부가 책임지고 보호해 주겠다고 나섰다. 새로 설립된 연방주택청에서는 장기간 낮은 이자로 주택자금을 융자해줬다. 모기지 대출(: 부동산을 담보로 주택저당증권을 발행해 장기주택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기간이 20년, 30년으로 늘어난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또한 주택 모기지 대출 시장을 미국 전역에 확대하고자 연방 주택 저당 조합인 페니 메이(: 미국의 경제대공황 이후 주택산업을 부양하고자 1938년에 창설된 금융기관)를 창설하였다. 매월 갚아야 할 이자가 줄자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이 집을 사고 싶은 것 같은데, 그럴만한 돈이 없군요. 그런데 잠깐, 가만 보니 매월 갚아야 할 융자금이 지금 내는 월세보다 저렴하네요!"
그러나 주택구입 장려 정책에서 소외된 집단도 있었다. 1941년 당시 대출을 받아 디트로이트에 집을 지으려면,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융자 여부가 결정되었다. 집을 지으려면 연방주택청의 지원 기준에 맞춰야 했는데, 백인들이 많이 사는 장벽 너머에만 대출이 허용된 것이다. 주민 대부분이 흑인인 구역에는 신용 불량을 이유로 대출을 승인해주지 않다. 주택 정책으로 도시가 양분된 것이다. 신용등급을 내세운 인종차별이었다. D등급 구역 거주자가 대출을 받으려면 백인 구역 거주자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했다(1980년대에 들어서자 이러한 관행은 프라임(: 신용도가 높은 우량등급)과 서브프라임(: 신용도가 낮은 비우량등급)으로 나뉘었다.) 1967년 7월 3일, 결국 인종차별정책에 분노한 흑인들이 격한 시위를 일으켰고, 약탈당하거나 불에 탄 건물이 3000채에 달했다. 이 사건으로 정책결정자들은 백인들에게 유리했던 주택보급정책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고, 흑인들에게 주택을 보급해 사회를 안정시키기로 결론을 내렸다.
영국 대처 수상은 이를 보고 영국 국민들에게 공용주택을 특별 할인가에 분양해줌으로써 내집장만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는 영국인들이 담보대출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기도 한데, 영국에선 1980년대까지 정부지원으로 융자를 받아 집을 사는 방식이 유리했다. 6-70년대에는 금리가 비교적 낮았고 물가도 상승하는 추세여서 주택담보대출 원금의 실질적 상환 부담을 덜 수 있었으나, 정부 입장에서는 물가 안정에도 신경을 써야 했기에 결국 금리를 인상하였다.
영국과 미국은 주택담보대출을 장려하고 나서 금리를 인상했으며, 이러한 주택정책의 결과로 80년대 후반 이들 두 나라의 부동산 시장은 유래없는 불황과 호황을 동시에 맞이하였다. 저축대부조합(: 구조조정 전문기관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이나 채권을 취급함)은 뉴딜주택정책에 힘입어 성장했으며, 1970년대 미국식 재산소유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저축대부조합은 인플레이율 상승 및 높은 금리라는 문제에 봉착하였다. 예금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데, 주택자금대출에서 회수되는 돈은 고정되어있어 이때부터 저축대부조합은 경영난에 직면하였다. 이에 미국 정부는 금융규제를 완화하였고, 각종 규제로 수익이 부진했던 저축대부조합은 규제완화를 기회로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다양한 대출 상품을 개발하였다. 금리를 인상해서 예금자로부터 자금을 모은 뒤 그 돈으로 대출을 해 주었는데, 이 때 예금자의 돈은 여전히 정부가 보호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엠파이어 저축 대부조합은 부동산 투자 사기극을 벌여서 큰 돈을 벌어들였다. 이곳의 동업자 대니 포크너의 특기는 땅값 부풀리기였는데, 헐값에 땅을 사들여 개발이 된다면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했고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엠파이어 저축 대부조합에서 대출을 받게 했다. 1984년, 택사스 일대의 부동산 난개발은 극에 달했는데, 정부가 보장한 예금은 개발업자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포크너와 엠파이어 저축 대부조합이 주택을 과잉공급한데다 외곽 고속도로면의 주택 수요가 극히 저조해 투자 가치가 없었다. 1984년 3월, 정부측 조사관이 이사실을 폭로하자 공사는 중단됐고 집 수백 채가 철거되었다. 그 후 그들은 사기죄로 수감되었다. 그 후 저축 대부조합 500곳이 줄줄이 파산했고 이 피해는 미국의 금융 위기를 초래했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은 재산소유 민주주의에 부정적 측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20년 후 닥칠 부동산시장의 위기에 비하면 영향력이 작았는데, 미국에 국한된 저축 대부조합 사태와 달리 최근 발생한 서브프라임 사태는 세계 금융을 뒤흔들었다. 2002년 10월, 부시 대통령은 5년 안에 소수민족 550만 가구에 내집마련의 꿈을 이뤄주겠다 선언하였다. 연방정부가 대출규제를 완화하자, 모기지 회사들은 대출상품을 개발하여 고객 확보에 나섰고 신용 등급이 낮은 서브프라임등급 해당자도 대출을 받았다. "소득도, 직업도, 재산도 없다구요? 걱정 마십시오, NINJA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닌자 대출 :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소득에 상관없이 받을 수 있는 대출) 80년대부터 대출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대출 기간이 짧아졌고 고객들은 만기 전에 이자만 내는 방식을 선호하였다. 이는 금리상승에 취약한 가계 부채 구조를 양산했다. 이 때 금리가 오를 경우 서브프라임 대출자가 파산할 것에 대비하여 은행들은 '증권화(: 금융시장에서 증권을 통해 자금조달 및 운용이 확대되는 것)'를 통해 그 위험에 대비하였는데 이는 서브프라임 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모기지 회사는 주택을 담보로 내어준 서브프라임 대출을 은행에 되팔고, 은행들은 사들인 대출을 증권화한다. 다양한 대출을 한 데 묶고 다시 여러 종류로 나눠 그 중 최상급은 AAA 투자 적격 증권(: 안정성 최상위급으로 최고의 신용 상태를 일컬음)으로 인증한다. 그 다음, 이 증권을 해외 투자자에 팔아 수익을 남긴다. 투자자가 내는 돈은 앞으로 받을 이자에 비해 매우 적다.
증권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모기지 대출이 이루어지는 곳과 해외 투자자가 사는 곳의 거리 때문이다. 금리는 낮고 실업자가 될 염려도 없으며, 부동산 시장까지 호황이었다면 결과는 좋았겠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는 주택 가치가 폭락하고 실업률과 금리가 폭등하는 디트로이트 지역에 2006년 한 해 동안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금융위기는 다른 곳으로 확산되었다.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매월 이자조차 내지 못하자 모기지 회사가 집을 압류하였고 멤피스는 압류 주택 도시로 전락한다.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붕괴하자 그 여파가 전 세계 금융 시장으로 퍼졌다. 헤지 펀드가 무너졌고, 유서깊은 투자은행이 파산했고, 생존한 금융 기관들도 수천억의 빛더미에 올랐다. 페니 메이와 자매 회사격인 프레디 맥(: 연방주택담보대출공사의 전신으로 1970년에 설립된 이래 주택금융서비스를 제공함)은 미국 모기지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성장했는데, 이들이 휘청거려 모기지 시장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2008년 9월 두 기업은 국유화되었다. 이번 금융 위기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노르웨이의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낸 세금을 서브프라임 증권에 투자하였다. 그 결과 투자 원금의 85%를 잃었다.
영미권에서는 부동산을 신뢰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부동산만 믿었다가는 손해를 보기 쉽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역시 가격이 한없이 오르다 어느 시점에서 추락할 수 있다. 부동산은 필요할 때 현금화하기 어려운 비유동적인 자산이다. 이 점이 영미권에서 주장한 재산소유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그렇다면 개발도상국에서 재산소유 민주주의는 어땠을까?
에르난도 데 소토(: 제 3세계 빈곤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페루 출신 경제학자)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의 빈민가엔 수 조 달러가 넘는 부가 잠재되어있지만 그 가치가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직접 지은 집에 살고 있더라도 집에 대한 합법적인 소유권이 없기에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릴수도, 자본을 마련을 방법도 없고, 창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현되지 못한 자본이 금융에 적극적으로 투입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는 허점이 있는데, 그들이 집의 소유권을 가진다 하더라도 금융기관에서 주민들의 주택 소유권을 담보로 인정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가장 확실한 담보는 소득이다.
소액금융 : 저소득 및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소액 대출, 예금, 보험 등의 금융서비스
볼리비아에서는 가난한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한다.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고,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염려도 없다. 집이 안전 자산이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여성의 신용이 안전 자산인 시대인 것이다. 물론 소액금융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수는 없다. 대출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듯 부동산 투자만 맹신해서도 안된다.
2008년 전 세계 부동산이 하락했다. 집을 담보로 계속해서 부동산을 사들이는 비정상적인 형태가 자본시장을 왜곡하기도 한다.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기에 매달리는 행위는 대단히 위험하다. 세상 어디서든, 경제의 핵심은 수입과 부채의 균형이다.
궁금증)
- 금리는 너무 어렵다... 설명해주는 유튜브를 봐도 어렵다 다섯번 더 봐야겠다
- 왜 볼리비아는 여성의 신용을 더 높게 쳐주는것인지..?
- 이번편 너무 어렵다..... 집을 담보로 부동산을 사는게 위험하다는게 감으로는 알겠는데, 왜 위험한것인지 인과관계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는 주택 가치가 폭락하고 실업률과 금리가 폭등하는 디트로이트 지역에 2006년 한 해 동안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대체 왜 투자한거야??
헤지펀드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서 흥미로워서 가져왔다!
헤지펀드 가입조건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헤지펀드는 자본시장법상 최소가입금액이 1억원입니다.
헤지펀드는 운용전략이 다양하고 복잡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자세한 운용 방법에 대해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입니다.
그래서 거액을 펀드에 투자해도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개인 또는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펀드 투자 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오 우리는 가입 못하는 상품이구나 어려운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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